세상이 흉악해져가는 게 아니다
올해 3월 12일의 일이다. 그날은 나에게 크게 두 가지 사건이 있은 날이다.
하나는 일본에서 일 할 당시 모시던 회장님이 돌아가신 날이고,
또 하나는 근처 사는 전과자가 나를 상대로 돈 좀 뜯어보려고 범행을 감행한 날이다.
집에서 영화보고 있는데, 밖에서 누군가가 창문에 물건을 던져왔다. 소리는 가벼웠다.
범인은 동네사는 전과자였는데, 밖에서 말싸움으로 이어졌고 그는 주먹질을 해 왔다.
사건은 쌍방폭행으로 접수되었다.
다행히 사건 직전에 카메라를 켜두어서 상황은 일부나마 녹화되어 있었고
전과자쪽도 맞고소하면서 헛소리를 한 가득 써 놓은 덕분에 최종판결은 가해자는 벌금형.
나는 아쉽게도 증거 불충분에 따른 불송치가 나왔다.
아쉬운 이유는 원래라면 당연히 무고죄까지 가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무고를 증명할 방법이 없어, 거기까진 갈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크게 세 가지 반응이었다.
'쌍방폭행인데 증거불충분 불송치라니 정말 운이 좋으시다.'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돈 뜯어낼 요량으로 전과자가 남의 집에 시비를 다 거느냐?'
'상대가 돈을 뜯을 의도가 있었다는 것까지 확실한데 어째서 감옥으로 안 보내느냐?'
대략, 법적으로 운이 좋았다는 평과, 전과자로 알려진 사람이 당당하게 범죄를 저지르는 지경인데 법은 왜 이렇게 작동하느냔 거다.
나도 어처구니가 없다 느낀다. 경찰이 문제인지, 수사권 분리 이전의 검사라면 이 상황에서 잡아 넣었을런지도 궁금했다.
무고 관련으로 담당형사와 대화해 본 바로는 가이드라인이라는 게 문제인 모양.
일종의 점수를 매기는 건데, 감옥에 보낼 수준이 아니라는 점과 상대가 의도가 있었다해도 의도가 계획 범죄였음을 입증할 수준이 못 된 것이다.
전과자는 경찰 결과가 나오기까지 돈을 뜯어볼 요량으로 우리집에 접근해 몇 차례 더 난동을 부렸고, 결과가 나온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통해 나는 이런 걸 느꼈다.
그는 감옥에서 새로운 범죄수법을 배운 것이다.
그리고 처벌 가이드 라인도 배워 나왔다.
여기서 흠칫하는 이가 있다면 나는 그걸 양심이라고 불러주고 싶다.
그렇다. 그는 각도기를 그것도 실전 각도기를 배워 나온 것이다.
난 그걸 느끼면서 세상이 흉악해져가는 게 아니라, 세상이 영악해져간다는 걸 세삼 느꼈다.
흉악도 영악도 결국 자기 입에 풀칠하기 위한 수단이겠지만.
흉악은 흑백으로 구분이라도 되지,
영악은 회색의 어딘가에 묻혀 죄와 사회에 묻히고 묻어
경계를 탁하게 만들기만 한다.
이러니 놀랍고 어이없는 일만 느는 거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