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달리아의 금식일

늦은 오후의 송파구 마천동의 도로

오늘은 유대교의 그달리아의 금식일이다.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금식하는 날인데, 유래가 흥미롭기에 여기에도 정리해 둔다.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은 유대왕국을 점령 후,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한다. 대부분의 왕족과 귀족들은 살해되거나 포로로 잡혔으며, 제사장과 지도자들, 문무관과 군 최고 장교를 포함하는 상류층들은 포로로 잡혀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된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리블라에서 무자비하게 죽임을 당했다 한다. 기록은 유다는 멸망당했고, 그들의 훌륭한 아이들은 죽음을 맞았다고도 기록한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은 유다땅을 사막화 할 마음은 없었다고 한다. 그는 가난한 계층이 계속 그 땅에 남아 작물을 경작하도록 허락했고, 유다땅을 통치할 통치자로 아히감의 아들 그달리아를 임명해 보낸다.

그당시 선지자 예레미야가 살아있었는데, 그에게는 유다에 남을지 영예로운 손님으로써 바빌론으로 갈지 선택지가 주어졌고. 예레미야는 형제들과 거룩한 땅에 머물기로 결정한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북쪽의 미스바라는 곳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예레미야는 그달리아의 부임을 지지해 주었고, 그달리아도 감사를 표하게 된다. 이로써 미스바는 백성들의 새로운 영적 중심지가 된다.
그달리아는 지혜롭고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었다는 모양이다. 작물 경작은 물론 안전을 보장받도록 기초를 놓도록 격려하였고, 그의 현명한 통치하에 유대인 공동체는 다시 번영하기 시작했다 하며, 해외로 피난간 유대인들에게까지 알려져 귀향을 결심하게 하고, 미스바에서는 그달리아에게 따뜻한 환영도 받았다 한다.

재밌는 건, 그달리아는 유대인들에게 바빌로니아 왕에게 충성하면 평화와 안전을 약속하겠다 권고했는데, 유대인들도 이를 잘 따랐다고 한다. 바빌로니아에서 온 주둔군도 유대인을 괴롭히지 않고 오히려 유대인에 우호적이지 않은 이들을 상대로 맞서 싸우며 보호해 주면서 유대인들의 부흥에 도움을 줬다는 거다.
여기까지보면 훈훈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다.

그런데, 당시 미스바에는 시드기야 왕가의 자손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도 있었다. 목적을 이루기위해 수단방법 안 가리는 야심가였다 하며, 조금 웃기게도 그달리아를 질투하기까지 했다고.

이스마엘은 그달리아를 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암몬 왕에게 도움을 청하기까지 하는데. 이 음모가 그달리아의 신하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의 귀에까지 이르게 된다. 요하난은 그달리아에게 살해음모를 알리고 경고했지만, 그달리아는 진실하고 관대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런 배신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봤다. 그래서 요하난은 이스마엘이 살해계획을 실행하기전에 비밀리에 그를 암살하자 제의하지만 그달리아는 단칼에 거절한다....
이스마엘은 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유대인들의 새해인 로쉬 하샤나에 미스바에서 잔치를 벌인 그달리아가 이스마엘을 초대한다. 이스마엘은 이날을 거사일로 결심하고 10명의 추종자를 데리고 참석해 그 자리에서 그달리아와 그의 신하들과 하인까지 상당수를 끝도 없이 살해하는 유혈사태를 벌인다. 유대인들은 이를 비겁한 배신으로도 본다. 이 사태는 잔치장소 뿐 아니라 주둔군 군대를 치고. 죽이지 않고 살려둔 이들은 포로로 삼아 암몬으로 도망까지 하니 정말 학을 뗄 일이었다 하겠다.

당시 이 난을 피한 사람은 요하난을 비롯한 그와 친교하는 세력뿐이었는데, 소식을 들은 요하난은 추가지원을 모아 암살범들을 추적한다. 요하난은 베냐민 기브온 근처에서 이스마엘을 따라잡아 포로들을 구해내는데는 성공하지만 이스마엘을 잡는덴 실패한다. 이스마엘은 그 길로 쉬지 않고 암몬으로 도망치게 되고.
남은 유대인들에겐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이제 느부갓네살의 진노를 부를것이고 그 노여움이 어디로 향할지 어찌 알겠는가. 이들이 도망갈 만한 장소는 공교롭게도 유대인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이집트정도였다. 절망과 두려움속에 사람들은 이집트 땅으로 가야겠다 결심한다.

피난행렬은 베이트레헴에 멈춰 서서, 예레미야에게 조언을 구하는데. 어려움속에서도 가난한 유대인들과 함께 해 왔던 이 선지자는 그 순간에도 이 민족을 향한 애정을 놓지 않고 있었다. 예레미야를 찾아 선 유대인들도 그를 믿고 의지하며 기다리기로 한다. 상황 자체만보면 그 실상은 동상이몽과 같은 상황이었다.
아무튼 예레미야는 열흘동안 주님께 기도했고, 마침내 주님이 신성한 메시지를 내려주신다.

“이스라엘의 주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 . 네가 이 땅에 여전히 거하면 내가 너를 세우고 멸하지 아니할 것이며 너를 심어 놓고 뽑지 아니하리라 . . . 너희가 두려워하는 바벨론 왕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 .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 . 그러나 너희가 너희 주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우리는 이 땅에 거하지 안겠다' 하고 '우리는 이집트 땅으로 들어가겠다' 하면 . . 그 때에 너희가 두려워하던 칼이 그곳 이집트 땅에서 너희에게 떨어질 것이요, 너희가 두려워하던 기근이 이집트에서 너희에게 이르리라. 그리고 거기서 너희는 죽을 것이다. . . 유다의 남은 자들아, 주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셨으니 애굽으로 가지 말아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경고하였으니 너희는 확실히 알라!”

그건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던 말이 아니었다. 예레미야 앞에서는 알았다고 하였으나 그들은 이집트로 내려갈 채비를 시작한다. 한편에선 예레미야가 네리야의 아들 바록과 함께 자기들을 갈대아인들에게 넘겨 죽이려 한다는 비난까지 돈다. 이 비난을 힘으로 삼아 예레미야와 바록을 데리고 이들은 이집트로 향하게 된다.

이집트 국경 근처에서 예레미야는 "너희가 생각한 평화가 결코 오래 가지 않을 것" 이라며 경고하고 "이집트가 느부갓네살의 손에 떨어져 무너질 것" 이라고 예언한다. 예레미야의 경고와 예언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그곳에서 피난민들이 현지 풍습에 물들어 우상을 숭배하여 돌아갈 수 없는 길에 들어설 것이라 경고하지만....

선지자의 경고와 예언은 민족을 향한 간청이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가진 공포와 절망에 떨고 있던 이들에게 들릴리가 없었다. 이집트에 들어간 이들은 주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이교관습에 물들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고.
몇 년 후, 이집트의 파라오 호브라가 암살되면서 이집트는 정치적으로 큰 혼란을 맞게되는데, 느부갓네살은 이 상황을 놓치지 않았다. 군대를 동원해 이집트를 상대로 침략전쟁을 벌인다. 이 기간중에 도피한 유대인 대부분은 죽임을 당했다. 예레미야의 무서운 예언은 다시한번 성취되었다.

예레미야가 어디에서 죽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예레미야와 바록은 바빌론으로 유배가 그곳에서 다른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과 지내다 죽은 것으로 여겨진다 한다.
그달리아 암살과 유대인들에게 일어난 비극을 기억하며 티슈리월 3일째 되는 날을 그달리아의 금식일로 삼아 새벽부터 밤까지 짧은 금식을 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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