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의 형태
목소리의 형태를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연관검색어로 좋지 않은 문구가 있다는 정도가 이 작품에 대한 내 유일한 인식이었다.
실제로 본 작품은.
우선 나는 본작은 물론 원작도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원작의 영상화라는 지점과.
이 작품 자체. 이렇게 두 지점을 같이 평하려 한다.
원작이 있는 작품이 영상화 되면 으레 구멍같은 것들이 보이기 나름이다.
나만이 없는 거리는 긴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1쿨 애니메이션이었지만.
보는 내내, 분명히 구멍이 눈에 보였다.
원작을 몰라도, 영상화 작품이 충분한 수준의 완성도를 갖지 못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부분인데.
이 작품에서는 그런 부분을 찾지 못했다.
오히려 이게 원작이라고 해도 나는 믿었을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무위키를 좀 읽어보기로,
원작이 대단한 평을 받는 장편인 동시에, 각 인물에 대한 입체성 있는 묘사와.
이 입체적인 인물들 간의 크고 작은 드라마가 큰 서사를 이루고있었던 모양이다마는.
나는 야마다 나오코 감독이
그 모든 것을 2시간 러닝타임에 담기 위해,
매우 심도있게 작품을 연구했고. 연출로 이를 거의 담았다고 봤다.
우선, 남자 주인공이 장애를 가진 여주인공을 괴롭힌 계기가
대의명분의 활자를 갖추고 있지 않지만. 행동계기에 겉도는 장애자를 밀어버리고 싶다는 심정은 분명히 묘사하고 있다.
또, 어린 시절의 여주인공은 분명히 스스로 엄청난 용기로 타인 앞에 두 발로 서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에서 초등학교시절이후,
아직 학생이라는 터널속을 여행하고 있는 이 두 사람이 결코 단편적인 인간성을 갖은 캐릭터가 아님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저 아이... 아니, 어쩌면 이 녀석들.....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지점에서 무릎을 탁 쳤다.
바로, 여주인공이 높이가 높지 않은 개울 위의 다리에서.
공책을 떨어뜨린 직후, 서슴없이 그 자리를 뛰어내리는 장면이다.
만약 일반인 주인공이라면, 이것은 좋게봐도 나쁘게봐도 색기 연출에 불과하지만.
여주인공은 장애를 가진 소녀다.
심지어, 짧게나마 남자주인공과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관객은 분명히 봤다.
이런 아이가 저런 행동을 한다는 건.
만약 작품이 허접했다면 모를까.
결과적으로 잘 만든 작품이었기에 가치를 평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는데.
이 순간이 말도 안되게 두텁고 아픈 상처를 모두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작품은 이렇게 초반을 넘어,
학생이라는 터널속에서.
작은 마을 속에서.
단순하지 않은, 매우 입체적인 개개인의 인격체로.
서로가 서로와 접촉하며 관계와 관계의 거리를 잡아가는 작업을 반복해 나간다.
이 과정은 보는 사람도 때로는 쓰리고, 아프며.
때로는 분노하게 되고, 짜증이 오르지만.
그럼에도 보게 되는 이유.
극중 인물 중 누구도 도망가기도 피하기도 쉽지 않은 이유.
그것은 개개인의 인격이라는 존재가 실존하는 세상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죽음이라는 극단적 단절 이외에 나의 상처도 내가 남에게 준 상처도.
가해자의 악행도.
가해자의 모든 종류의 도단도.
원하는 만큼 만족할 수준의 맺음을 볼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 현실을 관객이 함께해야 한다는 게 보는 이에 따라 매우 힘들었으리라.
그래서 그런 연관검색어가.
위키에 그러한 내용이 있었구나. 생각했다.
작품을 다 보고 나와서 든 생각은.
보길 잘 했다. 오랜만에 심금을 울리는 작품을 봤구나. 였다.
모두에게 추천할 수는 없지만.
이런 작품을 극장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라고 평하며, 글을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