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을 보고 왔다.
영화는 요즘 일본영화의 트렌드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다.
모든 인물의 입체적 캐릭터를 하나하나 보여주며,
주인공과 주변인으로 나눠진 세계가 아닌.
사람 사는 세계의 이야기로 그려지고는 있었다.
그런데. 영화를 가만보면서 한가지 본능적인 거부감이 강하게 일었는데.
사랑의 형태보다, 사랑이 중요한 소년과.
감정의 경계를 넘어 사랑의 형태를 알게 된 한 소년.
이 사랑에 본능적 거부감을 갖고. 반하면.
나도 괴물이란 말인가?
요컨데, 자유가 스스로의 본능-의지 그 무엇이든 좋다.
나아가고자 하는 곳에서 자기 하고 싶은 것을 취함에 있어.
이것이 타인에게.
혹은 세상에 해함이 없다면.
이 자유가 취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용인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전제에.
동의하게 된다면.
결코 확대해석이 아닌 이 사고논리에 기인해 다른 사례에 적용컨데.
그럼 내연기관 자동차도 사라져야 할 이유가 않으며
인간이 고기를 먹는 게 뭐가 나쁜가
왜 우리는 대체육을 먹어야 하는가?
왜 전기차를 만들고, 내연기관 차를 없애야 하는가
어쩌서 이것이 환경을 구하고 지구를 구하는 길일 수 있는가.
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자, 이러한 결론을 입에 담는 순간.
지구의 적. 꼰대. 뭐 그런 걸로 잡아 죽여야 할 괴물의 낙인을 찍어야 되는 게 맞을까?
너무 멀리갔다면 이번엔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퀴어라는 포커스에 맞춰보자.
사랑의 대상이 다른 한 인간이. 사랑을 표현하고.
또 다른 소년이 그 사랑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은 오랜 금기이며, 현 시대. 문명과 지성의 경전 앞에.
허용하고 개방하라 압력을 높여가는 자유의 전진위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이야기이다.
널린 게 사람이고. 어차피 어떠한 형태로든.
인간의 사랑과 성의 행태는 본질적으로 너저분한 거니까.
문명이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지금은 과거와 달라야만 하며.
따라서 이를 허용해야 한다.
그러니, 네 마음에 있는 본능적 거부감 또한 억제하고 이들을 받아들여라.
(...)
영화 괴물은 결코 퀴어에 매달려 포커스 맞춰진 영화가 아니다.
깊은 주제가 있고, 서사속에 많은 소재가 나온다.
그 가운데 내 심기를 건들이는 내용 하나를 집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임을 상기시켜둔다.
이것이 문명의 성취와 지성의 상달로 인해.
이제는 받아들여야 하고, 감싸 안아야 할 이야기라 한다면.
그것은 앞서 지적한대로 자유의 오용이며, 저항과 맞부딪히지 않을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 성역화의 희망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보는내내, 저 아이들 속에 피어난 사랑의 개화는 뭐 어찌되었든.
내면에서 나오는 본능적 거부감에 대해 지나친 옥쇄를 채운 것은 문제가 있어 보였다.
(근본적으로 만약 인간이 지성체로써 당면하여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면, 그 과제는 바로 집단괴롭힘의 작동트리거의 제거와 같은 우리의 삶에서 조금 더 앞에. 그리고 가까이에 있는 실존적인 사각지대와의 싸움이 1차적인 과저이지. 도대체 몇차에 둬야 할지 감도 안 올 동성애 문제가 여기에 들어오는 것 역시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영화 자체는 재미있게 봤다.
음악도 좋았고,
뭐가 어쨌튼 고레에다 감독 작품다웠다.
점수는 10점 만점에 9점을 줄 작품이었다.
요즘 메가박스 홍대점 콤보 굿즈 샘플이다.
메가박스 홍대점 가필드와 미키마우스 콤보 굿즈.
가필드 자체보다 그 앞에 있는 음료 플라모델에 눈이....
메가박스 홍대점 간첩가족 콤보 굿즈 샘플
그러고보니 아직 상영은 계속하고 있더라고..
오늘도 식채 한 캔 샀다.
이게 화근이 될 줄이야....
잘 찍은 사진이 한장도 없어 담아본 건데....
이번이 세번째 구매인데, 이놈이 말썽을 일으킬 줄 누가 알았으랴.
별로 흔들거나 하진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따자마자, 콜라에 멘토스 한 알 집어넣은 마냥.
폭발을 일으켰다.
만약을 고려해 휴지로 막고 있어 테러는 나혼자 당하고 끝났는데.
와..... 정말 끔찍한 경험이었어.